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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Artist’s statement)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시점의 순간들에 생겨나는 보통의 감정들이 있다. 그 감정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감정들은 그 보통의 감정들과 다른 존재이다. 그 중 크고 무거운 감정들이 하루 전체의 일상속으로 폭풍처럼 휘 몰아쳐 올 때 가 자주 있다.

 

  폭풍처럼 휘 몰아쳐 왔던 감정들을 나열해보자면 모두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나는 강박적 사고(obsession)강박적 행동(compulsion)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강박을 생기게 만든 원인인 불안 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를 겪으며 살고 있다. 그런 나 자신으로부터 이 런 비정상적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공황장애(panic disorder) 증상도 겪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성향 덕에 이런 것들에 크게 휘둘리지는 않는다. 다만 불편하다는 정도의 느낌은 가지고 살고 있다. 또한 오래전부터 이미 내 자체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이 것 들로부터 열심히 긍정적인 회피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속 안에 가득 차봤던 나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원래부터 존재해왔던 것 같고, 밝고 활기차고 에너지 적이고 절제되지 않은 긍정적인 것들이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보다 커 질 때 오히려 불안해진다. 이런 긍정적인 감정들이 이상하게 불편하다. 그래서 나의 겉면은 밝고 웃음이 많아 보이지만, 내 속에서는 어두움이 많고, 자주 감정의 딜레마(dilemma)에 빠진다. 그것들이 나의 에너지와 감정 소모로 이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직시하게 되었다. 그 어느 순간의 기준“나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라는 것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하다가,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을 보며 “나는 왜 이런 그림들을 그릴까?” 하는 그 이유를 향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연구하기 시작한 시점을 말한다. 나는 붓을 처음 잡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직감, 느낌, 모호’로 나의 작업을 애매하게 표현해왔다. 매번 내가 생각하던 처음과는 정반대로 마무리가 되는 경우 때문이다. 나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그 과정들의 모든 것들을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뚜렷한 방향성과 원하는 분위기는 형태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 모호 한 작업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림에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마저 담겼던 이유를 생각한 끝에 찾아낸 해답은 “마치 나의 정신이 나 자신을 부정하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게 만들어 그림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따뜻하며 다채로운 배경 속에 부정적인 표현을 사람과 대상 일부분에게 은유화 하는 순간, 그림의 형태와 모양이 뚜렷하게 마무리가 되어 완성이 된다.

 

  세상에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작품의 주제로 다루는 화가들도 생각보다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감정들을 의도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과 아주 다르다고 본다. 나의 이 모든 면을 직설적으로 주제로 삼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이고 직감적으로 표현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 깨달았을 뿐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을 다룬다는 것은 동일하다. 나의 어두운 내면 이외에 긍정적인 모든 바깥세상과 풍경들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며 살아가는 모습처럼, 나의 그림도 그런 나와 닮아 있었다. 나의 내면을 외면으로 승화시켜 하모니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나 스스로도 어떤 그림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들을 본 사람들의 반응도 정말 진실하고 거울처럼 반영이 된다. 불온전한 사람이 나의 그림을 봤을 때, 그림 속 사람과 대상을 통해 자신 속에 내재되었던 우울, 슬픔, 분노, 좌절, 나태를 공감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음과 동시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 반면에 온전한 사람이 나의 그림을 봤을 때, 전체적인 배경을 통해 따뜻함, 포근함, 몽환, 꿈, 나른함을 느끼게 하는 색감에 눈이 갔다고 했다.

 

  나의 영혼과 무의식이 묘한 우울과 불안을 따뜻한 새벽하늘, 알록달록한 숲과 호숫가, 강렬 또는 고요한 풍경 속 어느 부분에 표출한다. 2021년도 작업 일지 중 11월에 기록한 한 문장을 예를 들자면 “암 흑처럼 빛 하나 없는 우중충한 날, 비바람은 치고 들판에 빈 천막 두 개가 놓여있는 내 머릿속 이미지”라고 적혀 있다. 그 후에 완성된 그림은 이렇다. 과연 깊은 외로움의 메시지와 완성된 그림이 일치할까? 여기서 글과 그림의 일관성을 조금이나마 표현된 부분을 찾아보자면 빈 천막들이다. 대상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배경은 그런 사람과 대상을 미화한다. 그 속에서 이렇게 부정의 주체는 반드시 내재되어있다.

  그림 안에는 배경(하늘, 구름, 별들, 절벽, 다채로운 색깔의 면적 등등)대상(특정 자세의 사람, 나무, 의자, 태양, 달, 산, 배, 등등) 두 가지가 크게 도드라져 보인다.

  다시 정리를 하자면, 배경은 대상과 대조되어주는 역할을 하고, 긍정적인 경험들이 이미지화되어 몇 가지의 색채로 이루어진 2차원(Two Dimension) 적인 구상도가 되며, 이것을 토대로 페인팅을 시작한다. 배경이 완성되었을 때 사람과 대상을 어느 위치에 접목시킬지 결정되면 그림이 완성된다. 이 작업은 항상 페인팅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배경과 대상의 균형은 수평선(horizon)이 아니라 시소(Teeter-totter Seesaw)가 된다. 이것이 내가 일상 속 부정적인 강박에서도 긍정적인 감정을 함께 더 많이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고요한 자연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이미지들을 많이 찾아본다. 찾아본 사진들과 내가 직접 바깥에서 찍은 사진들은 그저 평범한 재료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만으로 사진 속의 분위기, 느낌, 구도를 재해석해 표현하는 편이다. 나는 빈 캔버스 위에 원색 두세 가지를 기름에 녹여 농도와 덮이는 두께를 이용해 1차적인 페인팅을 하는데, 이 과정으로 생긴 얼룩을 건조한 후 대비되는 색을 얹어 부분적인 형태를 만든다. 여기서 우연히 발생한 물감의 형태는 풍경(호수, 바다, 숲, 절벽 등) 혹은 대상(구름, 해, 나무, 바위 등)으로 드러난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이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재료는 주로 회화를 위한 유채 물감을 사용하며, 드물게 다양한 재료(오일 파스텔, 파스텔, 안료, 수채물감, 아크릴, 색연필 등)를 함께 사용한다. 전통한지(한지)에 목탄으로 대상을 스케치한 후 오려서 기름이나 물풀로 붙여 함께 콜라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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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Jindeo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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